천불생중니 만고여장야 天不生仲尼 萬古如長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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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인류의 스승으로 수천년 간 크나큰 존경을 받아왔다.

공자는 魯노나라 출신으로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공자 당시에 그가 이끌던 제자가 3천명이였으며, 사후에 더욱 세를 불리고, 마침내 유가儒家에서 법가法家가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역사가 사마천은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 그가 생전에 제후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대기를 세가世家에 올려 ‘공자세가孔子世家’를 지었으며, 그 제자들의 열전 또한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으로 지었으니,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히 짐작해볼 수 있다.

漢한나라 때 독존유술 이래 역대 왕조에서 유가와 공자의 지위는 더욱 높아지고,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공자는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가 성인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불생중니 만고여장야(天不生仲尼 萬古如長夜), 하늘이 공자를 내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칠흑같은 어둠과 같았을 것이다.
천불생중니 만고여장야(天不生仲尼 萬古如長夜), 하늘이 공자를 내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칠흑같은 어둠과 같았을 것이다.


천불생중니天不生仲尼 만고여장야萬古如長夜

“하늘이 공자를 내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기나긴 어둠의 밤이였을 것이다.”

공자를 찬양하는 수 많은 문장 중에 ‘天不生仲尼 萬古如長夜 천불생중니 만고여장야’ 라는 문장을 생각해본다.

하늘이 중니(공자)를 내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기나긴 어둠의 밤이였을 것이다.

즉, 공자의 존재는 어둠을 밝히는 빛이고, 어둠 속에서 밝아진 빛이며, 어둠 속에서 남을 이끄는 빛인 것이다.

공자의 인생은 어둠에서 시작되었다.

공자는 그 출생에서부터 사생아로 태어났다.

노나라와 송나라 국경에서, 송나라의 무인 숙량흘이 나이 70이 넘어 자식을 하나 더보고자 노나라 국경의 안씨집안 셋째딸 안징재라는 10대 소녀와 야합을 하여 낳은 것이 공자이다.

숙량흘은 공자 모자를 챙겨주지 못하고 죽었고, 안징재 또한 공자의 어린시절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젊어서 창고의 출납을 담당하는 창고지기나, 축사에서 가축의 밥을 먹여 키우는 관리인 등, 온갖 천한 일을 하다가, 낮은 관직을 얻고 무리를 모아 가르쳤다.

그러다가 후원자를 만나 주나라 낙읍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도서관장 노자도 만나고 주례의 본고장에서 예악을 익히는 한편, 세상에 대한 식견도 넓혔다.

본국인 노나라로 귀국 후에는 고위직에도 올랐으나, 내부 분열에 쫓겨나, 거지꼴로 주유천하하기도 하였다.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거대한 학단도 이끌고, 제자 중에도 출세한 이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공자는 평생을 순탄치 못한 고난의 삶을 살았다.

어둠 속의 공자가 인생의 길을 찾고자 분투하며 밝혀낸 빛은 바로 ‘배움’ 이였다.

배우고 익히는 학습學習이 그 것이다.

배우고 익힘으로써, 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 더 배우고 더 익힐수록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다 잘하는 이가 어디있는가?

갓난아기는 남의 돌봄이 없이는 살 수 조차 없으며, 성인이 되기까지 스스로 자립하기란 매우 어렵다.

오죽했으면 공자는 나이 30세가 되서야 비로소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는 이립而立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이립而立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배움이었으며, 공자가 그 배움에 뜻을 두었다는 나이가 15세인 지학志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공자는 배움이라는 도구로써, 인생을 개척해나갔으며,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런 그를 보고, 따라 배우고 익히고자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어둠 속의 인생들이였다.

공자가 가장 사랑한 안회顔回는, 공자의 어머니인 안징재와 같은 안씨顔氏였다. 비슷한 처지의 비천한 출신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의 제자 중 가장 개관천선한 자로子路는 동네 건달 출신이었다.

거친 가죽옷에다가, 머리에는 꿩 깃털을 꽂고, 허리에는 큰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자로는 원래 공자가 학당을 운영한답시고 고상을 떠는 꼴을 못봐, 그를 혼내주기 위해 겁박하러 온 건달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면한 공자는 큰 체구의 거구였으며, 그 누구보다도 비루한 출신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아 당당한 인간으로 스스로 일어선 위대한 인간이었다.

결국 그 불량한 자로도 공자에게 감화하여, 스스로도 배움으로써 인생을 개척하고자 공자의 가장 충실한 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에게 공자는 빛이였으며, 공자를 따라 배우고 익히며, 자신들의 인생을 밝히었다.

그들은 관직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부와 명예를 얻었다.

비단 공자의 직속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학단의 제자들, 그리고 공자 이래 2천5백년 동안 이어져내려온 유가의 제자들 모두 그러하였다.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공자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불생중니 만고장여야 天不生仲尼 萬古如長夜’라는 글귀만 보더라도 그 위상을 알아볼 수 있다.

중니를 제하고 그 누가 어둠의 세상의 불빛이 될 수 있었을까.

어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며, 두려움의 상태이고,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태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앞으로 나아가 개척하기는 커녕, 주저앉아버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공자가 밝힌 등불은 배움이였으며, 그 등불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인생을 개척하는 길을 간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자가 빛을 비추어준다.

용기를 내고 일어나서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자.

그렇게 한 걸음씩 먼 길에 도달할 수 있다.

기쁘고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더 이상 어둠 속에서 헤매일 필요가 없다.

공자가 먼저 그 길을 갔고, 그 제자들이 따라 갔으며, 이제는 그 길을 밝히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