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도(棧道)는 도저히 발딛을 곳 없는 가파른 절벽에 말뚝을 박고 판자를 얹어만든 길이다.
중국의 산악지대인 파촉(巴蜀)에서 중원(中原)으로 오가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길이다.
때문인지 파촉 지역에 자리 잡은 삼국지의 촉한(蜀漢)이 위(魏)를 치러 가는 길로 유명하다.
제갈공명의 출사표 루트가 바로 이 길인 것이다.
그보다 앞서 잔도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한 때가 있었으니, 삼국지의 모티브가 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초한쟁패 시대가 되겠다.
진(秦)을 멸망시킨 항우와 유방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제국은 이세황제 호해 때 붕괴되기 시작한다.
승사 이사을 환관 조고가 참소하였고, 정권을 잡은 조고는 제국을 통치할 역량이 부족했다.
진승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육국의 귀족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병하였다.
가장 강성한 초나라 항씨가문을 중심으로 연합군이 형성되었고,
나름 독자적인 세력이 있었지만 초나라 출신인 유방은 항우의 깃발 아래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항씨가문으로부터 옹립된 초회왕 웅심은 바지사장에 불과하였지만 연합군의 얼굴마담으로써,
가장 먼저 진나라의 수도 관중에 입성하는 자를 관중왕으로 봉한다는 공약을 내건다.
물론 누가봐도 그 자리는 가장 강성한 군대를 가진 항우의 몫으로 보였다.
그러나 항우는 관중왕에 관심가지기 보다는 진실로 조국의 원수 진나라를 박살내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듯 하다.
관중으로 곧바로 진격하지 않고, 진나라의 명장 장한이 이끄는 주력부대를 격파하기 위해 조나라 거록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록대전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 진나라 왕전의 손자 왕리를 포로로 잡는다.
항우가 이렇게 정공법으로 진나라를 격파해나갈 때, 약삭빠르게 오로지 관중을 향해서 진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유방이였다.
유방은 곡창지대 진류를 역이기를 통해 손에 넣은뒤, 거침없이 관중으로 향했다.
마침내 남쪽 루트로 무관을 통과했을 때, 진왕 자영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인정하고 유방에게 항복한다.
진나라 주력부대를 격파해가며 항우가 제국을 실질적으로 산산조각 내고 있을 때,
약삭빠른 유방은 오로지 초회왕의 공약에만 집중해서 가장 먼저 관중에 입성한 것이다.
유방은 약법삼장을 발표하여 함양의 인심을 수습하고, 소하는 진나라 행정을 접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아마 진짜로 관중의 왕이 될 생각이였나보다.
분노한 항우와 홍문의 연
유방이 먼저 관중에 입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조나라를 도와 파부침주하며 진나라 부대와 격전을 벌일 때,
유방은 오로지 관중왕이 탐나서 대의를 저버리고 관중으로 달려간 것 아닌가?
항우는 바로 당시 최강의 항가군을 이끌고 관중 성앞으로 달려가서 유방을 위협한다.
유방은 관중을 접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항우가 두려웠다.
그래서 장량의 진언에 따라 항우에게 납작 엎드리기로 결심한다.
항우가 진을 치고 있었던 홍문으로 직접 찾아가 사죄하고,
번쾌가 시간을 버는 사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야반도주를 한다.
서초패왕 항우의 분봉
항우는 자신이 원수처럼 생각한 진나라의 시황제처럼 제국의 황제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전국통일 이전의 질서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스스로 패왕이 되고, 나머지 땅은 육국의 귀족들과 공을 세운 이들에게 분봉했다.
유방이 괘씸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관중에 입성한 공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우의 눈에 유방은 그저 비열한 겁쟁이일뿐 위협되지 않는다고 여기었다.
통크게 분봉을 하여 대장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항우의 스타일이다.
다만 범증이 길길이 날뛰며 유방을 견제하는 바람에, 유방은 아주 엉뚱한 곳으로 분봉을 받는다.
유방과 그 패거리들은 초나라 패현 출신으로, 오늘날의 강소성 서주다.
한마디로 동쪽 중의 동쪽이다.
항우는 이런 유방을 서쪽 중의 서쪽, 오늘날의 사천인 파촉에 분봉한다.
산골짜기도 보통 산골짜기가 아닌 곳이다.
물론 진나라 때 정국거나 도강언 같은 관개시설이 건설되면서, 물산이 풍부하게 개발이 시작되기는 하였다지만,
중원은 커녕 관중에서도 멀고 먼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도저히 사람이 다니기에 위태로운 길.
바로 ‘잔도’ 였다.

유방이 잔도를 불태우고 파촉으로 들어가다
유방과 그 패거리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을 꿈꾸며 그 험한 전쟁터를 누볐는데,
고향의 정반대쪽으로 가서 쳐박혀 있으라니.
이건 ‘분봉’이 아니라 ‘귀양’이나 다름없었다.
그 곳에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불귀의 객이 되기 십상이다.
성질이 급한 이들은 산골에 쳐박혀 죽느니, 항우와 싸우다 죽겠다고 날뛴다.
유방 군대의 대부분이 그러한 마음이였을 것이다.
항우라고 별것인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자기들도 나름대로 관중에 가장 먼저 입성한 실력있는 군대이다.
어차피 패현에서 별볼일 없었던 인생인데, 벼락출세의 갈림길에서 도박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먹물 좀 먹은 소하는 달랐다.
항우와 싸워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파촉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설득했다.
소하가 누구인가?
유방의 패거리 중 몇 안되는 관리 출신으로, 패현에서는 그 뒷배를 봐주며 사람들을 살펴주던 덕망 높은 인물이였다.
모두 소하의 말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술 더떠서 장량이 진언한다.
파촉에 들어가는 즉시 잔도를 불태우라고.
이게 왠 헛소리인가 날뛰는 자도 있었겠지만, 유방은 장량의 큰뜻을 수용한다.
잔도를 불태운다는 것은 중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고,
앞으로 영원히 항우에게 대적하지 않고 산골짜기에 뼈를 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유방이 파촉과 관중을 잇는 유일한 길인 잔도를 불태웠다는 소식을 듣자 항우는 더 이상 겁쟁이 유방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의심많은 범증은 관중을 지키는 삼진三秦의 제후로 분봉된 장한, 사마흔, 동예를 이용하여 유방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뒷통수를 치고 재기하는 유방
유방은 물론이고 그 패거리들 모두, 단 한사람도 빠짐없이 고향이 그립지 않는 자가 있을까?
잔도를 불태우는 것은 항우에게 더 납작엎드려 제발 목숨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하는 정성의 표시였지만,
유방과 그 패거리는 언제나 항우의 뒷통수를 쳐서 무너뜨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했을 것이다.
행정능력을 발휘하는 소하는 파촉의 풍부한 물산을 활용하여 유방의 세력을 부유하게 했고,
파격적으로 대장군이 된 한신은 유방의 군대를 훈련시키고, 관중으로 쳐올라갈 최상의 전략을 구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度陳倉이라는 고사로써,
잔도를 수리하는척 적을 방심시키면서 진창으로 돌아 관중으로 진격했다.
유방은 방비에 허술했던 삼진의 제후를 격파하고 관중을 장악하였고,
항우에 반대하는 제후들을 규합하여 본격적인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게 되니,
초한쟁패의 서막이였다.
성공을 위해서는 굴욕의 자세에도 정성을 다한다
성공을 위해 굴욕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 셀 수 없이 많으며,
누구든지 순간 눈한번 질끈감고 굴욕을 당하는 것은 해볼만 하다.
그렇지만 그 굴욕에도 정성을 다해 쑈를 하는 경우도 흔할까?
유방이 산골짜기 벽지인 파촉으로 들어갔다고해서, 범증은 물론이고 항우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삼진의 방패막을 세우는 것으로 모자라, 유방을 다시 불러내 죽이거나, 파촉으로 쳐들어가 토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방이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 잔도마저 불태우는 정성을 보이자, 범증마저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발발 기는 자를 더 밟아서 무엇한단 말인가.
유방은 소하의 말에 따라 미련을 버리고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파촉으로 순순히 들어간다.
장량의 말에 따라 더욱 정성으로 항우에게 복종하는 자세로 속이기 위해 잔도를 불태운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기왕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면,
그 정성의 댓가는 분명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