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뜻을 세우지만, 그 뜻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공명을 떨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부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으며, 각자가 세운 뜻은 다 다르지만, 뜻을 이루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인생이 자기가 생각한대로만 흘러갈 수는 없고, 노력한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밀어부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고사를 이야기하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그야말로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삶에 대하여 논해본다.
일모도원 뜻
일모(日暮)는 해가 저문다는 것이고, 도원(途遠)은 갈길이 멀다는 것이다.
길을 가야하는데 날이 저물고 있으니, 그 시간의 촉박함이 얼마나 초조하게 타들어가겠는가.
해야 할일은 많고, 이루고자 하는 뜻은 높은데, 아직 도달하지 못한 탄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야 한밤 중에도 온갖 조명들로 불을 켜놓고 있으니, 밤이라고해서 갈길을 못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밤을 모르는 불야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교외로 빠져나가도 가로등이 없는 곳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인 곳이 적지 않다.
하물며 수천년 전에는 오죽했겠는가.
저 멀리 석양이 지며, 점점 해가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질 때, 그 피곤함과 노곤함에 지쳐있음에도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자서의 집념과 의지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말은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공자가 춘추를 저술한 시점이 대략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완전히 무너지고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전을 춘추시대라고 부르고, 이후는 전국책에서 이름을 따와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이 춘추시대 말 격동의 시대를 장식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오월춘추(吳越春秋)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치고 박는 그 치열한 복수혈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오월춘추의 서두는 바로 오자서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楚)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원래 이름은 오운(伍員)이고, 자가 자서(子胥)이다.
대를 이어서 초나라에 충성하였으나, 초나라 평왕과 간신 비무기의 협잡질에 의해 가문이 도륙나고 만다.
초나라 평왕이 자신의 태자의 부인이 될 예비 며느리의 미색에 반하고, 비무기가 부추겨서 몰래 취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태자가 보복할 것을 두려워, 비무기는 태자와 함께 태자의 스승이었던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를 죽이고자 한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은 초나라 평왕에게 불려가 죽임을 당하고, 태자와 오자서는 북쪽의 정나라로 탈출한다.
아버지 오사가 죽기 직전 둘째아들 오자서가 잡히지 않고 살아서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훗날 기어코 초나라의 후환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오자서의 성정과 기질을 잘 알고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나라(鄭)에서도 권력 투쟁에 휘말려 태자 건은 죽고, 오자서가 태자의 어린아들을 데리고 다시 야반도주한다.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서 구원해줄 곳이 없었고, 오자서는 동남쪽에 있는 오나라(吳)로 도망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오나라로 도망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탈출해서 나온 초나라로 다시 들어간 뒤에, 아예 관통을 해서 다시 빠져나가야 오나라로 갈 수 있었떤 것이다.
오자서는 왜 하필 그 어려운 길을 뚫고 오나라로 가고자 했던 것일까?
자신을 현상수배해서 추격하고 있는 초나라로부터 더 멀리 도망치면 더 안저하지 않았을까?
오자서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해서, 그 복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곳이 바로 오나라였던 것이다.
오자서는 친구 신포서의 도움으로 초나라에는 어찌어찌 들어왔지만, 이제 관통해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다.
춘추시대 때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초나라는 그야말로 밀림 천지였다.
지치고 굶주리는 것도 문제였고, 밤이슬을 피할 곳도 없이 야생의 맹수들의 위협에도 시달렸다.
더군다나 초나라의 추격병들은 계속해서 망을 좁혀오며 따라붙고 있었다.
문무를 겸비한 오자서는 일전에 추격해온 병사들을 쏘아죽이기도 했지만, 계속된 도주생활에 이제 몸과 마음도 몽땅 지쳐버렸다.
더군다나 혼자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어린 태자의 아들까지 데리고 가야한다.
지친 몸을 어거지로 끌고 오나라로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오자서에게 보이는 것은, 저 끝없이 멀리 펼쳐진 길과 벌써 저물어 넘어가는 석양뿐이다.
그야말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도대체 오나라 국경은 언제 당도한단 말인가!
오자서는 앉아서 쉴 여유가 없었다.
마음 속에서는 오로지 복수를 해야한다는 집념과 의지가 불타오르며, 여전히 이를 갈고 있었다.
쉬지 않고 뛰고 걷고, 마침내 국경에 이른다.
중간에 강을 건널 때 어부의 도움으로 추격병을 따돌린 일화도 유명하다.
그렇게 오나라에 도착한 오자서는 공자 광을 도와 거사를 일으키고, 왕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바로 춘추오패의 한사람이 되는 오왕 합려이다.
이후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 등과 함께 초나라를 쳐서 마침내 그 수도인 영(郢)을 함락시킨다.
당시 오자서의 원수이자 그 모든 복수심의 표적이었던 초나라 평왕은 이미 죽고 묘에 묻힌 뒤였다.
오자서는 초나라 수도에 입성하자마자 평왕의 묘를 찾아 시체를 파내고, 구리채찍으로 시체가 가루가 되도록 매질을 했다.
무려 300대를 때리고 나서야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때 오자서의 옛친구이자, 한때 그의 도주를 도왔던 신포서가 나타나, 그의 행동이 너무 잔혹하다고 나무랐다.
한때 오자서 가문이 섬겼던 초나라 왕을, 더군다나 이미 죽어 묻힌 사람의 시체를 파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매질을 했어야 했냐는 것이다.
그러자 오자서가 답하기를, 날은 저무는데 갈길은 멀어서(日暮途遠),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倒行逆施)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일모도원의 고사 유래이다.
이후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패자로 만들어 공명을 떨친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가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이며, 이 두나라의 복수극인 와신상담(臥薪嘗膽)에서 오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를 돕는 복수에 또한 일조한다.
물론 이후 월나라의 모략에 사리분별이 흐려진 부차는 오자서를 자결시키게 되고,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패망하면서 오월춘추의 이야기는 끝난다.
일모도원 예문과 용례
그 유래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모도원은 도행역시와 함께 짝을 이루지만, 그 자체로 사자성어로 충분히 사용해볼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고 마음은 조급한데, 아직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을 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에서의 뜻이 오자서가 필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일이였던바, 사소한 일보다는 일생에서의 중요한 목표나 원대한 목표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고사성어이다.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아직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야말로 일모도원이니 오늘도 쉬지 않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는다.
송나라 주자의 시에 나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 늙기는 쉬워도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와 비슷한 맥락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좀더 심도있게 이야기해보자면, 역시 일모도원의 뒤에 따라오는 말이 도행역시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촉박한 상황에서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오자서가 복수를 위해 이미 죽어버린 초나라 평왕의 시체를 파내어 구리채찍으로 300번이나 매질을 했듯이,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니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오자서의 복수에 대하여
오자서가 복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행한 것은 단순히 평왕의 시체를 매질한 것뿐만이 아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오고가며 도주하였고, 오나라로 가서는 거사를 일으켜 공자 광을 오왕 합려로 만들었다.
그리고 재상이 된 오자서는 기어코 초나라로 쳐들어가서 원한이 사무친 복수에 성공하고, 이후 오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들었다.
오자서는 이후 오월전쟁에서도 활약하였고, 자결하는 순간까지 집념과 의지가 가득한 삶을 보여주었다.
사마천은 사기 오자서열전에서 이렇게 논한다.
오자서가 생사를 넘나들며 온갖 치욕과 곤궁함을 견디어내고 마침내 그 공명을 이루었으니,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자서의 복수 이야기의 바로 뒤를 잇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그야말로 피터지는 필생의 복수, 와신상담 이야기가 있다.
나무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매일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던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그보다 앞서 복수의 뜻을 이룬 오자서가 있었다.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뜻을 접는 것은 더 어렵다!
이것은 어쩌면 그야말로 사마천이 말한대로, 장부의 기질이다.
지치고 힘들어서, 날이 저문다고하여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면, 추격병들에 의해 잡혀죽는일뿐이다.
복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나라로 가지 않고, 오로지 살기 위해 더 북쪽으로 도망가거나, 아무도 쫓지 않는 곳에서 숨어산다면, 살아도 의미가 없는 삶이다.
오자서는 피곤한 몸이 부서질지언정, 그런 의미 없는 삶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뜻을 기필코 이루어야한다는 사명감의 부담이 아니라, 그 뜻을 이루지 않고서는 밤잠이 오질 않는 기질 그 자체인 것이다.
뜻을 이루고자하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흔히 길(道)에 비유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역시, 날이 저무는데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고, 잠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다고 했던가.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 길이 곤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고, 필연이다.
이루기 어려운 뜻이야말로, 그야말로 일생에 노력해서 이루어야할 뜻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는 길에서 지칠 수 있다.
지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인가.
당연히 발도 터지고, 다리도 끊어질 것 같고, 배도 굶주리고, 목도 타들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길을 가지 않으면,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집념과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무엇인가?
초나라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오나라 국경으로 도망치던 오자서!
그 피곤한 몸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던 오자서!
그 길 위의 하늘에서 벌써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초조함에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오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칠 수 없는 집념과 불타는 의지로 마침내 원하는 뜻을 기어코 이루고야만 오자서!
오자서의 일모도원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무기탄 촌평
자기의 뜻을 이루는 길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오자서의 길처럼 멀고 험하며, 해가 넘어가면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에서 지치지 않고 쉬지 않고 가야할 것이다.
날은 저무는데 갈길은 멀다는 뜻으로, 시간 등이 대단히 촉박함에도 아직 원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조급함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말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오자서가 가문이 도륙나고 초나라 국경을 넘어 오나라로 도망간 뒤에, 오나라 군대를 끌고 다시 초나라로 쳐들어와 복수에 성공한 이야기에서 나왔다. 작은 목표보다는 주로 일생에 이루고자하는 원대한 목표에 사용하는 것이 맞다. 대표적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에도 인생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했을 때 사용하면 적절하다. 사마천의 사기 오자서열전에 보면,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가 그의 복수가 너무 잔혹하고 과하다고 나무라자, 오자서가 대답하기를 ‘날은 저무는데 갈길은 멀어서(日暮途遠), 이치에 맞지 않음에도 할 수 밖에 없었다(倒行逆施)’라고 하였다. 잔혹한 복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당화한 문구이다. 사마천이 말하기를, 곤궁함과 치욕을 견디어내고 마침내 공명을 이루고 뜻을 이루었으니,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어코 뜻을 이루어낸 위인으로 평가받는다.요약 및 질문과 답변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뜻은 무엇인가?
일모도원의 유래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일모도원의 적절한 예문으로 사용한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일모도원과 짝을 이루는 도행역시는 무슨 뜻인가?
오자서의 복수는 어떤 평가를 받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