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한방에 팍팍 알아듣는 사람도 있지만, 말귀가 어두운 탓인지, 지능이 낮은 탓인지, 아니면 아예 내키지 않은 태도를 가진 건지, 설명도 설득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우이독경 뜻을 알아보면서, 말이 안통하는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해보도록 한다.
우이독경 뜻
우이(牛耳)는 말그대로 소의 귀이고, 독경(讀經)은 경전을 읽는다는 것이니, 우리식 속담으로 말하면 ‘쇠귀에 경 읽기’가 되겠다.
네글자의 한자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넓은 범주로 보면 사자성어이기는 하지만, 본토인 중국에서는 쓰지 않은 한문이다.
대신 중국에서는 소를 두고서 거문고를 친다는 대우탄금(對牛彈琴)이라는 표현이 있다.
보통 경전에는 유가의 경전도 있고, 불교 경전도 있으며, 각종 사상을 정리한 텍스트 문서 일체를 일컫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시경, 서경, 역경을 비롯해서 불교의 금강경과 그 축약본인 반야심경, 기독교의 성경 등도 모두 경전이다.
그야말로 인류 문명 철학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오하기도 심오하여, 보통 사람들은 몇구절이나 들어나 봤지, 무슨 내용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경전이다.
그런데 이 경전을 소에게 읽어준다는게 무슨 소리인가.
소가 아무리 일 잘하는 똑똑한 가축이라고 하더라도, 코뚜레를 뚫어야 끌고 다닐 수 있지, 사람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하물며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전은 오죽하겠는가?
한마디로 수준이 안되는 자에게 말하는 사람의 욕심으로 계속 이해도 안되는 말을 떠드는 것을 우이독경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는 말귀에 동풍 바람이 스친다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말이 있다.
마이동풍의 경우에는 이백의 시를 원전으로 하기 때문에 우이독경과는 다르게 명백한 한문이다.
그러나 마이동풍의 경우에는 수준이 떨어져서 못알아듣는게 아니라, 관심이나 흥미가 없어서 시큰둥하게 반응이 미온적인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아예 뭔말인지도 못알아듣는 쇠귀에 경읽기하고는 느낌이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지식과 정보는 물론 감정을 교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교류의 매개체는 단연코 언어이며, 이러한 행위가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지면 대화이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면 설명이 될 수도 있고, 좀더 적극적으로 타인의 수긍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설득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함으로써, 그 사람이 그 내용을 이해해주고 수긍해주며 맞장구 쳐주는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다.
그것은 실제로 일을 협조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도움이 되기도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심적으로도 강한 유대감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남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남이 내 말에 납득해서 긍정적인 행동으로 응답하는 설득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내 말뜻을 온전히 전달하는 설명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활동반경이 좁은 사람이라면, 대충 학업이나 생업을 그 동안 함께 해오면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모이기 때문에 말이 좀 통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활동반경이 넓을수록 오만가지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을 두루 만나게 되면, 같은 하늘아래에서 사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식 수준은 물론 감정적인 정서도 확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확하게 확률로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우이독경의 경우는 그야말로 일상에서 다반사로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모두 이해시키거나 납득시키는 일은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이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조차 아니다.
사람마다 수준이 있고, 살아온 방식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 심지어는 가족간에도 지식수준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며, 동상이몽으로 딴 소리를 할 수도 있다.
내가 잘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아무 관련도 없는 남이 그만큼의 수준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잘하는 일에 대해서, 남이 완벽히 이해해서 따라와주고 척척 해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남의 수준을 나와 같다고 여기면, 우이독경의 상황에서 속이 갑갑해서 열불이 터지고 홧병이 날지도 모른다.
똑같은 인간의 몸뚱아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나는 잘알고 잘하는 일을 왜 저 녀석은 저렇게 이해를 못하느냐고 화가 치밀어오를지 모른다.
자기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한들 어쩌겠는가.
그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능력있는 남이 작정을 하고 끌어당겨주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은 자기 수준에 머무르며 살 수 밖에 없다.

설득과 설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말귀를 못알아듣는 우이독경의 상대에게는 애써 목이 쉬도록 연설을 해댈 필요가 없다.
눈만 꿈뻑꿈뻑거리는 사람에게 무얼 설명한단 말인가?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사람에게만, 도움이 될 때, 설명과 설득이 보람이 있고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설명하면 된다.
물론 사람을 겉만 보고서,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인가 아닌가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자세와 태도만 보고도 절반의 낭비는 줄일 수 있다.
뚱딴지 같은 헛소리를 하거나,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설득이나 설명은 매우 어렵고 고된 길이다.
그때는 과감하게 접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이 더 현명한 선택과 집중일 것이다.
물론 남을 설득한다는 과정은 남이 내 말에 납득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리는,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말귀를 알아들을만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낫다.
소귀에는 아무리 좋은 경전을 열심히 떠들어봐야 절대로 못알아듣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