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겐신이 용변을 보다가 죽다

  • 카카오톡 공유하기
  • X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네이버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 링크 복사하기
msa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이다.

에치고의 용(越後の龍)이라고 불리면서,

가이의 호랑이(甲斐の虎)라고 불린 다케다 신겐(武田信玄)과 필생의 라이벌 관계를 이루었다.

스스로를 비사문천(毘沙門天)의 화신이라고 부르면서,

전쟁터에서는 군신(軍神)으로 적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였던 우에스기 겐신.

그러나 그의 최후는 너무나도 허망하였다.



노부나가보다는 반박자 앞세대

일본 전국시대의 판도를 가르는 가장 중심의 인물은 누가 뭐라해도 오다 노부나가일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합전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상락을 저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다.

이후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가면서, 마침내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몰아내고,

천하인(天下人)이 되었다.

노부나가의 이러한 행보는 기존의 다이묘들에게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 것이 상락을 꿈꾸는 다케다 신겐 같은 야망가들에 의한 것이였든,

막부의 통치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우에스기 겐신 같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자들에 의한 것이였든 말이다.


독특한 출신과 성장의 우에스기 겐신

우에스기 겐신은 독특한 출신과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의 집안은 원래 에치고 지방(오늘날의 니이가타 현)의 슈고다이였던 나가오(長尾) 가문이였다.

겐신의 원래 이름 또한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이며, 겐신(謙信)은 그가 훗날 사용하는 법명이였다.

법명이라고하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린시절 출가를 했었다.

가문의 늦둥이로 태어나서 가독 상속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쓸모없는 자식 취급을 받았다.

불문에 출가한 겐신은 절에서 성장하면서 그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전국시대에 빈번했었던 하극상이 마침내 에치고에서도 벌어졌다.

나가오 가문이 우에스기 가문의 뒷통수를 친 것이다.

이 때 겐신은 우에스기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어 본격적인 실력 발휘를 하게 되고,

마침내 우에스기 가문을 접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에스기 가문이 막부로 부터 받은 ‘관동관령’ 관직까지 얻게 되었다.

겐신이 이 관직을 영예롭게 여기었는지, 그는 무로마치 막부 체제를 지지하게 된다.

절에서 자란 겐신은 역시 인격과 사고관 형성에 불교의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스스로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중 한명인 ‘비사문천’의 화신이라고 여기었다.

물론 불교 국가인 일본의 모든 문화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심지어는 노부나가 마저도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고 불렀다.

그런 까닭일까?

불법을 수호하는 비사문천의 화신 우에스기 겐신은, 불법을 망가뜨리는 제육천마왕 오다 노부나가를 제압하고자 하게 된다.

겐신은 생활 태도에서도 출가자 출신의 모습을 보이었는데,

생애불범(生涯不犯)이라고 하여 여성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겐신이 여성이라고하는 루머가 돌기도 한다.

절밥을 먹고 큰 탓인지, 지나칠 정도로 절제된 식단을 고집하였다.

물론 건강에는 아주 해로운.

굶다가 맨밥에 우메보시 짠지 몇개를 얹어 식사를 해결하였는데,

그 와중에 폭음을 즐기어서, 짠지 안주 몇점에다가 독한 술을 들이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사람의 몸이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건강하지 못했던 겐신

물론 당시 일본 전국시대 때 건강한 신체를 오래도록 지킨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영양도 좋지 못했을 것이고, 항상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겐신은 다른이들보다 훨씬 일찍 건강이 심각하게 상하였다.

그의 건강을 가장 상하게 한 것은 영양 불균형과 짜게 먹고 폭음하는 식습관이였을 것이다.

생애불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건강한 신체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며, 사리사욕이 없는 카리스마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몸을 잃고 말았다.

나이 40 즈음에는 혈액순환에 큰 문제가 생겨 몸을 절기 시작하였다.


노부나가와의 격돌

겐신의 필생의 적수였던 다케다 신겐이 상락을 준비하다가 급사한다.

신겐은 겐신보다 10여살 정도 연상이였다.

비록 다케다 신겐이 천하의 패권을 쥐려는 야망으로 상락을 준비하다가 죽었지만,

겐신은 자신의 적수였던 신겐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때 그에게 심히 거슬리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신겐의 죽음을 가장 환영할 인물,

오다 노부나가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의 상락의 표적이자, 가장 위협을 느끼던 인물이었다.

오다의 동맹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대패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노부나가도 간담히 서늘했을 것이다.

그런 풍림화산의 군대가 신겐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멈추게 되자,

노부나가는 이제 물만난 고기마냥 다시 설치게 되고,

마침내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몰아내고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시키고야 만다.

막부의 관동관령이자, 불법을 수호하는 비사문천 우에스기 겐신은

더 이상 노부나가를 눈뜨고 봐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세력이 격돌하게 된 곳이,

오늘날의 이시카와 현 노토반도에 있는 테도리가와 강가였다.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가 이끄는 대군단이 진격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낀 히데요시는 중간에 도망갔고,

가쓰이에는 우에스기 겐신이 직접 군대에게 난타를 당하고 대패하였다.

겐신은 본격적으로 노부나가를 치고자 하였고, 그 해 겨울을 넘겨 날이 풀리면 진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일본 전국시대 가장 강력한 군웅이었으나, 평소 건강을 관리하지 못해 결정적인 순간에 허망하게 죽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일본 전국시대 가장 강력한 군웅이었으나, 평소 건강을 관리하지 못해 결정적인 순간에 허망하게 죽었다.


허무하게 죽은 우에스기 겐신

그러나 그 겨울은 겐신이 맞는 마지막 겨울이였다.

한겨울을 넘기었음에도 여전히 추운 날씨가 계속 되었다.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겐신은, 그 겨울추위 동안 더욱 더 몸이 악화되었을 것이다.

짠지에다가 술을 폭음으로 들이키는 생활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날이 풀리면 노부나가를 치러갈 생각에 오히려 설레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겐신은 뒷간에 용변을 보러 갔고, 그 것이 겐신의 마지막이였다.

용변을 보기 위해 복부에 강한 힘을 주는 순간, 혈압이 높아진 까닭인지,

겐신의 뇌혈관이 터져버렸을 것이다.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진 겐신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만다.

오늘날의 의학에서도 인체의 건강 중 혈관 건강은 가장 핵심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균형된 영양, 흰쌀밥에 짠지만 곁들인 고염 고당 식사, 쉬지 않고 술을 들이키는 폭음.

혈관이 이미 망가진 겐신은 40대부터 몸을 절었고, 머지 않아 혈관질환으로 죽었다.

비사문천의 화신, 군신이라고 불리며 카리스마 넘치게 전장을 휘젓던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은,

이토록 허무하게 죽었다. 평소에 건강 관리를 안해서.

인간은 자신의 몸을 초월해서 뜻을 이룰 수는 없다.

몸이 망가지면 뜻도 꺾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