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법삼장 約法三章, 약約은 끈(糸)으로 매어 묶어버린다는 것으로, 약속한다는 뜻도 되고 요약한다는 뜻도 된다.
즉 세개 장의 법을 약속했다는 뜻도 되고, 법을 세개 장으로 줄였다는 뜻도 되겠다.
진나라가 법가法家로 나라를 통치하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라고 할만큼 많은 학문과 사상이 자유롭게 일어나며 유세객들이 활약하였다.
그 중에서 공자孔子를 따르는 유가儒家사상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상으로써 많은 이들이 배우고 따랐으며, 공자의 제자들은 전국 각지에 진출하며 세력을 뻗쳐 나가고 있었다.
유가의 사상 중 현실 문제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구로써 법法과 술術을 강조하던 이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법가法家가 되는 것이다.
전국시대의 많은 나라들이 부국강병을 위해 법가에 관심을 보였고 변법을 시행하였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변법을 추진하고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던 것은 秦진나라였으며, 변법의 성공으로 전국통일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진왕 영정嬴政이 진제국의 시황제始皇帝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법가 사상으로 진제국을 설계한 승상 이사李斯의 활약이 컸다.
이사는 유가 사상가였던 순자荀子의 제자였다.
진나라는 정복하여 통일한 6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법法을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차동궤車同軌 서동문書同文 행동륜行同倫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국통일을 이루기 위함이였다.
周주나라가 무왕벌주武王伐紂로 천하를 평정하였지만, 구주九州를 모두 통치하지 못하고, 제후를 분봉하여 다스렸다.
이후 춘추시대니, 전국시대니 하면서 각지의 제후들이 박터지게 싸우면서,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군사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였다.
강력한 법으로 모든 관습마저도 하나로 통일해야하는 강제력이 발동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행정통제만으로도 불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으며,
장성과 여산릉 등 무리한 토목공사와 6국에 대한 가혹한 통치는 곧 진나라에 대한 저항과 반란으로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가혹한 법 때문에 유방이 반군에 가담하다
진나라에 저항하여 일어난 반군은 여러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나라를 잃은 육국의 귀족이 그 중 하나이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으로 인해서 도저히 살 수 없어 이판사판으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또 그 중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박랑사에서 시황제 암살을 시도한 한韓의 장량張良, 초楚의 재건을 위해 일어난 명장 항연項燕의 후손 항량項梁과 항우項羽 등이 그들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로써 귀족이 아닌 많은 평민들이 반란에 적극 가담하였는데, 첫빠따로 봉기의 시작을 끊은 진승과 오광은 부역에 끌려갔다가 공사 기한을 맞추지 못하여 법에 따라 사형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초나라 패현 풍읍 중양리 사수정장이였던 유방劉邦 역시 여산릉으로 인부들을 인솔하고 가던 중, 인부들이 도망쳐버리자 처벌이 두려워 반군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유방이 그 누구보다도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은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만하다.
유방이 관중에 가장 먼저 입성하다
항량과 항우에 의해서 옹립된 초회왕은 바지사장일지언정, 명목상 반군의 왕이였다.
그리고 반군들이 앞다투어 진나라를 쓸어버리러 달려가게끔 파격적인 약속을 하나 하였는데, 진나라의 수도 함양이 있는 관중關中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에게 관중의 왕으로 봉한다는 것이였다.
항우의 군대가 趙조나라를 도와 거록에서 진나라 명장 장한과 대전을 벌이는 등 정면 돌파를 하고 있을 때, 약삭빠른 유방은 남쪽에서 성주들을 회유해가며 신속히 관중으로 진격하였고, 마침내 무관을 넘어 관중에 입성하고, 힘없는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가장 먼저 관중에 입성한 것이다.
진왕의 항복을 받았고, 자신도 나름대로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항우가 인정하진 않겠지만)초회왕이 관중의 왕으로 봉해준다는 약속도 있었으나,
유방이 관중을 곧 바로 관중을 장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진제국의 심장이며, 가혹했을지언정 시황제의 카리스마가 덮혀져 있는 땅, 진나라 사람은 특유의 순박함과 성실함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6국을 정복하고 전국통일을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초나라의 시골 정장 출신의 유방이 패거리 군단의 힘만으로 장악할 수는 없는 곳이였다.
그러나 유방은 역시 제왕의 기질이 있었다.
관중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 것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바로 숨막히는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는 것이다.

약법삼장 約法三章
약법삼장, 나라의 법을 딱 3개 장으로 줄인다고 했다.
남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도둑질하거나 다치게한 자는 벌을 주며, 이외의 법은 모두 없앤다고 하였다.
관중 사람들은 열광했고 유방을 통치자로 인정했다.
관중을 장악한 것은 유방의 무력이 아니라 ‘약법삼장’ 이라는 선전 정치술로 가능하였다.
물론 법 없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였지만, 딱 그 시기에 힘이 딸리는 유방이 관중을 장악하는 일에는 매우 유효하였다.
이후 유방은 초한쟁패에서 승리하고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다시 엄청난 법들을 부활시키었고, 한무제 때에 이르면 한나라의 법 조문은 진나라 때보다 몇배는 복잡하게 불어났다.
역사에서는 이러한 모순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한고조 유방이 ‘약법삼장’ 이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선전술로 순식간에 대중의 열광을 끌어내고 관중을 장악하였음을 고사로써 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