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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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 이른바 삼시훈(三矢訓)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수많은 버젼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래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화살이 아니라 나뭇가지로 유사하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귀모(鬼謨) 모리 모토나리

일본의 전국시대, 혼슈의 서쪽 지방을 쥬코쿠에서 활약했었던 센코쿠 다이묘가 있었다.

(쥬코쿠는 오늘날에는 히로시마가 위치한 지역이다.)

바로 모략에 아주 정통하여 귀신에 가깝다고 하여, ‘귀모(鬼謨)’ 혹은 ‘모신(謨神)’ 불린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 였다.

훗날 쥬코쿠 뿐만 아니라 서부 일본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구축했기에, ‘서국 제일의 다이묘’라고도 불리었다.

보통 일본 전국시대의 이름난 다이묘들을 논하자면,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전국시대 중후반기를 넘어가면서 소위 말하는 천하인, 패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장하기 이전에 전국시대 초기에 활약했었던 다이묘들을 보면 개성 넘치고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

다만 너무 앞서 태어난(?) 탓에 수명이 다하여 일찍 죽었기 때문에 큰 대권을 쥐지는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에서 박터지게 싸워 한 지역을 평정하는 군웅이 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죽었다.

모리 모토나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야말로 뛰어난 모략으로, 당시 쥬코쿠의 강자였던 오우치 가문과 아마코 가문을 모두 무너뜨리고 일대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모리 모토나리의 세 아들

모리 모토나리에게는 정실부인에게서 나은 자식이 셋 있었다.

삼형제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삼형제는 부모가 같지만 성(姓)이 달랐다.

첫째아들은 모리 타카모토(毛利隆元), 둘째는 깃카와 모토하루(吉川元春), 셋째는 고바야카와 다카카케(小早川隆經)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모리 모토나리가 깃카와 가문과 고바야카와 가문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 집안을 작살내고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꽂아넣어 대를 잇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의 일본에서도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양자로 들어가서 성을 가져오는 등의 경우를 볼 수 있다.

장남 모리 타카모토는 내정에 성실하고 성품이 온화해서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는 용맹하고 전쟁을 잘해서 오우치 가문과 아마코 가문을 멸망시키는데 활약하였으며, 오다 가문의 하시바 히데요시의 진격을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삼남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난 인물이 아닐까. 그 유명한 모리 수군을 이끌었고, 모리 모토나리를 닮아 모략에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에 참전해서 벽제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이여송으로 대표되는 조명연합군이 평양을 탈환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자, 파주 벽제관으로 요격을 나가 격파를 한 전투이다.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 이야기는 단순히 형제간의 단결을 너머 가문의 진정한 존속과 번영에 대한 가르침이다.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 이야기는 단순히 형제간의 단결을 너머 가문의 진정한 존속과 번영에 대한 가르침이다.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 이야기

이렇게 모리 가문의 삼형제가 제각기 개성이 넘치고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각자 성(姓)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다보니, 아버지였던 모토나리는 삼형제의 화합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 아들을 불러놓고 가르침을 주었다.

먼저 각자에게 화살을 한대씩 나눠주며 꺾어보라고 하였다.

모두 힘자랑하듯이 우지끈 쉽게 꺾어버렸다.

그리고나서는 세개의 화살을 뭉쳐서 쥐어주며 꺾어보라고 하였다.

단순히 계산해보아도 세배 이상의 힘이 들 것이다.

삼형제는 모두 세화살 뭉치를 꺾지 못했다.

아버지 모토나리는 말했다.

“한대씩 꺾어버리면 결국 모두 꺾이지만, 화살이 세대만 모여있어도 꺾이지 않는다. 너희 삼형제가 이렇게 화합한다면 모리 가문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 것이 이른바 삼시훈(三矢訓).

그 유명한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 이야기이다.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이 말하는 진정한 생존

모리 가문의 내력을 살펴보자면, 이 이야기가 단순히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남 이승만 박사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Join or Die’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의 성을 갈아치우면서까지 세력을 확장하는데 이용하고, 삼형제가 각자 개성넘치게 활약한 것처럼, 모리 가문의 번영과 존속에는 이 후손들 각자의 개성이 크게 작용하였다.

장남 모리 타카모토가 일찍 죽고 그 아들인 모리 데루모토가 가문의 당주가 되는데, 모리 데루모토는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총대장을 맡았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대패하면서 가문이 멸문지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때 너무나도 흥미로운 것은, 모리 모토나리의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의 아들이었던 깃카와 히로이에는 동군의 승리에 베팅하여 내통하였고, 동군의 승리를 도왔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에야스가 자신에게 대적한 모리 가문에 책임을 물었을 때, 이 깃카와 히로이에는 사촌형님 모리 데루모토에 대한 간곡한 탄원을 내어 가문을 벼랑끝에서 살려내게 된다.

심지어 모리 모토나리의 삼남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의 양자였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원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처조카)는 세키가하라에서 대놓고 동군에 배신하여 결정적으로 전쟁의 판을 엎어버린다.

이렇게 모리 가문의 후손들은 아주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삶을 살았다.

서로 따로 또 같이 활약하며 세키가하라에서는 동서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모두 결정적으로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모리 가문의 존속에 기여하였다.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은 결국 똘똘뭉쳐 가문을 지탱한 격이 되었다.

모리 가문은 에도 막부 때 죠슈번의 당주 가문으로 계속 번영하며 존속할 수 있었고,

마침내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주역이 된다.

세 아들을 성을 갈아치워가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게 만든 모리 모토나리.

그가 말한 진정한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은, 단순히 뭉쳐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있든 가문을 위한 일에는 뜻을 모으라는 것이 아닐까.

모리 모토나리 세 화살의 교훈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