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동풍 뜻, 세상 사람들이 흘려듣는 말과 세상을 바꾸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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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언어라는 것이 생겨난 이래, 단순히 의사소통을 넘어 언어는 인간의 삶과 문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말 한마디를 귀하게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며 연설하고 경청하기도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마이동풍처럼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개짖은소리마냥 신경쓰지 않고 흘려듣기도 한다.


마이동풍 뜻

마이(馬耳)는 문자 그대로 말의 귀를 뜻하고, 동풍(東風)은 그저 특별한 의미는 없는 살랑거리는 바람을 뜻한다.

그 뜻을 풀어보자면, 말의 귀에 스쳐지나가는 동풍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에 말도 아무런 감흥도 반응도 없다는 말이다.

원래 그 출전은 이백의 시에서 유래하였다.

이백은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면서,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신선처럼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풍류를 즐기며, 복잡한 인간세상의 일을 한바탕 시로 위로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나라 때는 여러 유명한 시인이 있는데, 이태백이라고 불린 시선 이백이 있고, 동시대를 살았던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성당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유명했다.

젊어서부터 정처없이 이것저것 쑤시면서 하릴없이 보내다가, 글재주가 꽤나 뛰어나서 시를 잘짓는 것으로 유명해지고, 그렇게 관운도 트이는듯 하였으나, 너무 직설적인 시를 지어 권력자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당현종이 너무나도 사랑해서 나라를 말아먹게 만든 양귀비의 친척 오빠였던 권신 양국충과 환관 고역사로부터 찍혔기 때문에 더 이상 세속적인 출세에 뜻을 둘 수도 없었고, 신선처럼 세상을 방랑하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노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위로했다.

오늘 이야기할 마이동풍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이백이 자신의 가까운 친구에게 시를 지어 보내기를, ‘세상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듣고도 고개만 까딱거리니, 마치 말귀에 동풍이 스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백이 세상을 향해 뭔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당나라의 사정은 매우 혼란스러워지고 있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측척무후 사후 다시 당나라를 일으켜 세우며 개원의 치라는 치세를 펼친 당현종 이융기는 며느리 양귀비와의 불륜에 빠져 정사를 잊고, 권신 양국충이 나라를 주무르며, 각지의 이민족들이 발호하는 것은 물론, 곧 안록산과 사사명 같은 절도사들의 반란으로 당나라는 멸망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백 또한 양국충과 고역사의 미움을 받아 조정의 출세길이 꼬이고 망쳐진 울분에다가, 비슷한 처지의 지식인들은 나라가 개판이 되었음을 열심히 떠들어댔을 것이다.

하지만 조정은 물론이요, 세상사람들 조차도 그런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말귀에 동풍 바람이 스치듯이 그냥 ‘그런가보다’할 뿐이다.

결국 당나라는 이민족 출신 절도사 안록산의 난에 크게 휘청거리고, 소금밀매업자 출신 황소의 난으로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며, 토벌군 절도사 출신 주전충에 의해 완전히 망하게 된다.


마이동풍 뜻은 말 귀에 동풍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뜻으로, 실천 없이 입만 잘털어봤자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마이동풍 뜻은 말 귀에 동풍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뜻으로, 실천 없이 입만 잘털어봤자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세상사람들은 왜 이백의 말에 관심이 없었는가

말이라고하는 것, 언어라고하는 것은 인간의 문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인간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말빨이 좋은 사람은 어느 무한경쟁의 시대에서든지 잘먹고 잘사는 예를 부지기수로 볼 수 있다.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의 유세객들은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신분제도가 있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말만 잘하면 같은 신분에서도 특출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이었다.

하물며 현대사회는 어떠한가?

언변이 화려하면 무슨 일을 해도 더 잘해낼 수 있으며, 무일푼으로 장사를 하고 영업을 해도 부를 축적할 수 있고, 요즘처럼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에는, 인간 기업이라고 불릴 정도의 소득과 수익을 올릴 수도 있으며, 선거에서 유세를 기가막히게 하면 권력을 손에 쥘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말의 힘’이다.

하지만 신선처럼 시를 잘짓는다는 이태백의 마이동풍처럼, 아무리 말을 잘해도 세상사람들은 보통은 시큰둥하다.

주변에 청산유수로 말을 잘떠드는 달변가들은 많지만, 실제로 출세하거나 성공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왜그럴까?

귀에 동풍이 스친 것 마냥 시큰둥한 세상사람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말만 떠드는 사람이 문제인가?

우리가 소위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르는 개념의 진가가 바로 여기에서 들어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소통이라고 하면 말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매개체가 말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이심전심, 불립문자 같은 심오한 표현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눈빛이나 표정만으로도 뜻이 전달될 수 있는 것처럼, 의사소통에는 비언어적인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백이 아무리 절묘하신 시로 권신 양국충과 환관 고역사를 신랄하게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대중들에게는 그저 술마시면서 화려한 말솜씨를 늘어놓는 시인의 노래에 불과하다.

그가 살아온 삶이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에 대한 진지함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동풍으로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백은 혁명가도 정치가도 지식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용이 되지 못한 불운한 이무기 독서인도 아니며, 신선처럼 세상을 떠돌면서 놀다간 시선(詩仙)으로 남은 것이다.

중국의 오천년 역사에서 신선이 큰 한획을 그은 일이 있던가.

마이동풍처럼, 스쳐지나가듯 역사에 언급되는 경우는 있다.

시황제를 조롱한 서복이나, 칭기즈칸의 불로장생 꿈에 현실적인 충고를 던진 장춘진인 구처기 정도이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의 마이동풍같은 현란한 언행에 흥미는 있었지만, 그것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냉철하게도 알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

세상을 향해 내 말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세상 사람들이 시큰둥하다면 그것만큼 힘빠지는 일이 또 있을까.

허공에 대고 목이 쉬도록 외쳐도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 상황은 그야말로 탄식이 절로 나오고 갑갑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백이 술을 그렇게 들이켜댄 것도 정신줄을 놓고 싶은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세상 사람들이 이태백의 시를 흥미로워하고 경외심까지 느꼈지만, 정작 그가 떠드는 내용에 고개만 흔들뿐 동조하지 않고 무심하게 식어버린 것의 이유가 바로, 이백 스스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 모두 대중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논하였다.

술병을 끼고 아무리 입을 잘털어봐야, 그저 입만 터는 사람이 하는 말은 마이동풍에 불과하다.

이백처럼 세상을 향한 불만을 마이동풍으로 쏟아낸 사람도 있는 반면, 곽자의처럼 조정에 출사하여 영욕의 뜻을 펼치려하는 사람도 있었고, 황소처럼 분연히 떨쳐 일어나 파란만장한 영웅호걸이 되고자 한 사람도 있었다.

결국 세상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고, 실천이다.

물론 이백의 시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이태백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하지만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백처럼 술 마시고 신선처럼 놀면서 떠드는 시는 마이동풍에 불과하다.

역사와 인생은 행동과 실천에 의해서 바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