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운 난관의 연속이다.
뜻한바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법은 없고, 온갖 간난신고를 겪고서야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에는 불운하게도 끝내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오늘은 마부작침(磨斧作針) 뜻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끈기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마부작침 뜻
마부(磨斧)는 도끼를 갈아내는 것이며, 작침(作針)은 바늘을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든다는 뜻이다.
도끼는 적어도 크기가 손바닥 이상으로 크고, 최소한 나무장작은 팰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칼을 가는 것과 도끼를 가는 것은 천지차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은 날카로운 칼날로 대상을 베는 것이지만, 도끼는 무게를 실어서 쪼개는 것으로 사실상 둔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렇게 큰 도끼를 갈아서, 그야말로 실만큼이나 가는 바늘로 만든다는 것은 여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가정에서 쓰는 식칼을 갈아본 사람은 알것이다.
칼을 숫돌에 열심히 간다고해서, 그야말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닿자마자 베어질 정도로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칼을 갈아 그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근데 칼을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도끼를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몇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이 성어에는 유래가 된 고사가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에 관련된 일화이다.
이백은 이태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두보와 함께 성당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로 풍류와 관련된 시를 천재적으로 잘지어서 시의 신선이라는 시선(詩仙)의 칭호로 불린다.
이러한 그의 시 문체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수긍이 가는데, 이백은 서역 출신으로 페르시아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유가적 전통의 한족과는 다른 풍모를 지녔다.
특히 젊어서는 무술과 도술에 관심이 많아 무뢰배처럼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다니다가 나중에 스승을 만나 개과천선했다고 한다.
이 이백이 젊은시절 글을 배우다가 싫증이 나서 때려치우고 방랑을 나서는 길에 어느 계곡의 냇물을 지나게 되었다.
그 냇물에서 웬 노파가 열심히 쉬지않고 도끼날을 돌에다가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백이 노파에게 무엇에 쓰려고 도끼날을 그렇게 열심히 갈으냐고 묻자, 노파가 계속 도끼를 갈면서 대답하기를 바늘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였다.
황당한 답이었지만, 이백은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묵직한 도끼날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갈다보면 언젠가는 바늘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마부작침의 고사이다.
이후 이백은 글을 짓는 일에 계속 정진하여, 마침내 장안에 명성을 떨치는 시인이 된다.
끈기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마부작침의 고사를 보면, 도끼날을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기행으로 조롱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백처럼 그 심오한 뜻에 탄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노파가 갈던 것이 도끼날이 아니라 쇠공이라는 설도 있는데, 둘다 갈아서 바늘로 만들기엔 택도 없는 쇳덩어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파가 도끼날을 계속해서 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주변에서 뭐라고하든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부작침의 일화에서 느낀 탓일까, 이백도 일생 동안 시를 지으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이백은 유협의 생활을 하면서 무술과 도술 등 온갖 잡다한 재주를 배우면서 시를 지었고, 자신보다 10살 이상이나 어린 두보와 막역하게 지내면서 같이 여행을 다닐 정도로 격의가 없었다.
또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 당대 최고의 권력자 양국충 앞에서도 기세가 죽지 않았고, 당현종의 최측근으로 황궁의 문고리 역할을 하던 환관 고역사에게 술주정으로 대놓고 모욕을 주어 벼슬길이 막혔을 정도로 거침 없었다.
이런 이백의 성격이였기에, 남 눈치를 보지 않는 끈기의 마부작침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주변에서 조롱을 하든, 비웃든, 이러쿵저러쿵 수근대든지간에, 이백은 그야말로 마이동풍의 고사처럼 자신의 길을 갔다.
세상 사람들이 이백의 말을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은것만큼이나, 이백도 세상의 소리를 마이동풍으로 흘리며 자신의 길을 갔다.
그렇게 이백은 구름을 타고 달에 올라 노는 시의 신선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목표가 있어야 끈기도 있다
쇳덩이 도끼날을 쉬지않고 죽치고 앉아서 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바늘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있어야 목표 달성을 향한 끈기와 노력, 집념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에 마부작침을 해서 기어코 바늘을 만들고자하는 뜻이 없다면, 그 묵직한 쇳덩이 도끼날을 뭐하러 갈겠는가?
목표가 없는 삶만큼 건조하고 공허한 것은 없다.
마치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무풍지대에서 고사하는 유령선과 같다.
목표가 있는 삶은 늘 열정과 설레임으로 가득차있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노력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 그리고 내일은 또 무엇을 하여 어떤 성취를 이루어낼지 기대가 가득하다.
바늘을 만들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면, 아주 작게나마 조금씩 갈려나가는 도끼날을 보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인생에서 목표를 이루고 달성하는 것이 사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이 의도했던 것과는 딴판으로 갈수도 있고, 생각치도 못했던 성과로 인생의 업적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노력이 있었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끈기로 인해서 성취가 가능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목표가 있는 노력,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밀어부치는 끈기!
인간세상의 어떠한 성취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