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놈보다 맞는놈이 나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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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린놈과 맞는놈, 누가 더 나쁜놈?



현실적인 인간 공자

공자(孔子)는 인류의 스승이자 제일의 성인으로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다.

공자가 이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자님이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였던 것이 아니라,

비천한 출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구로써 ‘배움(學)’이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같이 배우는 무리들을 모아 학단을 만들어,

마침내 유가(儒家)에 이르게 된다.

공자가 가르친 과목이 육예(六藝)라고하는 굉장히 실용적인 학문이였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자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이였다.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며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귀찮은 허례허식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용기와 기량을 스스로 길러나가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였다.


공자의 제자들

공자의 가르침의 정수가 담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논어(論語)’이다.

논어는 공자가 저술한 책이 아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이 담긴 이야기를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묶어 펴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의 가르침은 대부분 그 제자들과의 이야기에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대체로 공자와 비슷한 처지가 많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공자와 마찬가지로,

안회(顔回)라든지, 자로(子路) 같은 대표적인 제자들 모두 공자와 비슷하게 출신이 비루하였다.

안회는 공자와 비슷한 환경의 집안(공자의 어머니 안징재와 같은 안顔씨이다) 출신이며, 자로는 동네 건달 출신이였다.

그 외 많은 공자의 제자들은 성곽 안에 살지 못하고, 밖에 살았던 출신 성분이 낮은 자들이였다.

물론 개중에는 공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귀족과 그 자제들도 있었으나,

진정 공자와 함께 성장한 이들로써 후세에 알려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구구절절한 상갓집 개에 비유되던 공자의 무리였다.

소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하는 대표적인 제자들은 공자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세대였으며,

안회와 자로 같은 이들은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안회는 고생을 너무나도 많이한 나머지 요절하였고, 자로는 공자에게서 배운 신념을 지키다가 죽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 역시 외지에서 벼슬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등 공자를 떠나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학단에서 그 사상의 계보를 잇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공자 말년에 노나라 곡부에서 그의 제자들이 3천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공자의 계보를 잇는 자들은, 공자의 초기 제자들보다는 다음 세대에 들어온 자들이며,

오늘 이야기할 증삼(曾參)이 대표적이다.

증삼은 공자와 나이 차이가 40살이 넘게 나는데, 그 아버지였던 증점(曾點) 때부터 공자의 제자였다.


융통성이 없었던 증삼이 나쁜놈

증삼은 공자의 학단에서 그 계보를 직통으로 이어받아 ‘증자’로 존경받게 된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또한 증자의 제자가 된다.

증자는 특히 ‘효(孝)’에 있어서 ‘효경(孝經)’을 지을 정도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우리나라 삼한의 백제 왕이였던 의자(義慈)왕이 효가 지극하여 해동의 증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효’라고 하는 것이 주는 느낌에서 알 수 있듯이,

증삼은 굉장히 융통성이 없는 인물이였고, 이로인해 지극히 현실적이였던 공자로부터 많은 타박을 받게 된다.

유학이 충(忠)이나 효(孝)라는 개념에 매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현실주의자, 실리주의자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증자이다.


때린놈 보다 맞는놈이 나쁘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때린놈 보다 맞는놈이 나쁘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때린놈보다 맞는놈이 나쁜놈

증삼이 공자에게 크게 혼이 난 사연이 있다.

증삼의 아버지 증점은 마찬가지로 공자의 제자였었는데, 그 기록에 상당히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폭력적인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어린 자식이였던 증삼을 복날에 개패듯이 두들겨 패는 이야기 나오는데,

융통성이 없었던 증삼은 피떡이 되도록 웅크려 맞기만 하였다. (어린 것을 떠나서 워낙 융통성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매질이 끝나면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가 이렇게 기운이 넘치시도록 건강하셔서 너무 기쁘다. 내가 맞음으로써 노여움이 풀리셨다면 그것 또한 너무 기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황당한 이야기가 마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고, 공자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된다.

공자는 크게 노하여 학단에서 증삼을 내쫓으라고 역정을 내었는데,

증삼이 스승을 찾아가 까닭을 묻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고대의 순(舜)임금은 아버지가 계모와 짜고서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작게 괴롭히면 당하였어도, 작정을 하고서 진짜 죽이려고 하면 도망쳐서 숨어있다가 상황이 잠잠해지면 돌아오셨으며,

그럼으로써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비극을 막으시었다.

그러나 너는 무엇이냐? 니가 맞아 죽기라도 하면 네 아버지는 자식을 죽인 파렴치한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고, 나라에서는 살인자로 형벌을 맞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기 손으로 자식을 죽인 것을 안다면 그 비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 이 불효막심한 나쁜놈아.”

라고 하면서 증삼을 타박하시었다.

이 것이 바로 위대한 공자님의 가르침이다.

남이 때린다고 맞는다면, 자신의 몸도 상할 뿐더러, 남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맞은놈이라도 나쁜놈이다.

반대로 적극성을 발휘하여 그 상황을 자신이 통제한다면, 자신의 몸도 지킬 수 있고, 남과 원수가 될 일도 없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였던 공자

공자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통수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된다면 인생을 더욱 발전적으로 이끌며, 성장과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