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김우중 회장의 방천시장 신문팔이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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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김우중 회장은 한국의 한 시대를 풍미한 기업인이였다.

비록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에 기대어 무리한 사업확장과 부실한 자금운영으로 부도가 나고 기업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면치 못하였지만,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그의 책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어필하듯이,

이른바 ‘세계경영’이라고 명명된 그 특유의 공격적인 경영은,

월급쟁이에서 거대 기업 집단의 총수로 출세하였음은 물론, 사세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이였다.


대우 김우중의 세계경영

김우중의 경영방식은 매우 공격적이였다.

그는 자기사업을 하기 전에 한성실업이라는 섬유 수출업체의 월급쟁이였다.

어느 정도 무역감각을 익힌 김우중 회장은 특유의 일벌레 기질로, 월급쟁이의 생활이 갑갑하였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해봤자 남의 회사 좋은 일만 시키고, 자기는 봉급만 받아 풀칠한다면 무슨 재미로 일을 한단 말인가?

일한만큼 돈을 쓸어담는 재미를 즐기려면 자기 사업을 해야한다.

김우중은 자기 회사를 창업하여 섬유원단과 와이셔츠 수출 회사를 세운다.

이 것이 ‘대우실업’이였다.

김우중 회장은 판을 키우는데는 귀재였다.

돈이 없고 통이 작은 사람은 판을 키울 수 없다.

돈이 많거나, 통이 커야 벌리는 일마다 판을 키울 수 있다.

통이 크다는 것은, 없는 돈을 끌어와서 판을 벌릴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돈을 잘못 끌어써서 빚쟁이가 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남의 돈을 끌어다가 큰 판을 벌려 떼돈을 번다면 이것이야말로 금융(자금의 융통)이 추구하는 최상의 경우일 것이다.

재주가 좋은 사람은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고, 그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이자를 주면 된다.

김우중은 능히 이 최상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였다.

돈을 끌어다가 해외에서 판을 벌리고, 나중에 대금을 받아 돈을 갚는 식의 자금흐름을 특유의 배짱으로 운영하며,

적은 자본금으로 창업한 대우실업의 사세를 순식간에 불린다.

이후 종합상사로 거듭난 대우는 건설, 조선, 자동차, 가전, 금융 등 문어발처럼 영역을 확장하고,

체제가 붕괴된 기회의 땅 동유럽에 발빠르게 진출하여 무주공산을 장악하려는 ‘누비라’ 경영행진을 이어간다.

이런 경영은 김우중 특유의 기질에서 나온 것이다.

김우중의 그 기질을 보여주는 어린시절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대우 김우중 신문팔이 일화는 그의 사업가적 기질을 보여준다.
대우 김우중 신문팔이 일화는 그의 사업가적 기질을 보여준다.


방천시장 신문팔이를 싹쓸이한 김우중

김우중이 태어날 때는 매우 유복하였다.

그의 부친은 관료이자 교육자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부친이 납북되고 형들이 군대에 끌려가면서, 가세가 급격히 위태로워진다.

결국 어린 소년 김우중도 돈을 벌기 위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다양한 비즈니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봐야 무엇이 있을까?

가장 만만한게 신문배달이였다.

그래서 대구 방천시장에서 영남일보를 배달하는 일을 시작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면 신문을 돈주고 사서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은 커녕 TV나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였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면 신문을 사서 보는 것이 제일 고상하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였다.

당시엔 신문 구독과 수금 개념이 없었는지, 신문배달원이 일일이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모든 시장에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다.

공급자가 많으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돈을 벌어야하는 소년 김우중이 신문배달 일을 찾았듯이, 당시 일하는 소년들에게도 가장 만만한게 신문배달이였다.

신문배급소는 서로 신문을 받아가서 팔려는 소년들이 경쟁해야한다는 전쟁터였다.

방천시장에서 신문을 사서 보는 어른들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급하려는 소년들은 많다.

어느 한명이 공급량을 늘리고자 가격을 내릴 순 없다.

아무래도 신문이라는 것은 박리다매 상품이므로 가격을 내렸다간 다같이 죽는 짓이다.

그렇다면 서비스의 질을 높이거나, 영업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꿔야한다.

여기에서 김우중 특유의 기질이 촉발하기 시작한다.

당시에 신문배달 방식은 1부를 건네고, 하나하나 대금을 챙기는 방식이였다.

어린 소년들은 돈을 떼어먹힐까봐 전전긍긍하며, 따박따박 대금을 받을 때까지 문앞에 서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큰 김우중은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다.

그는 돈을 받지 않고 신문부터 뿌렸다. 매일 신문을 보는 사람에게는 얼굴도 안쳐다보고 신문부터 던져주고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시장을 한바퀴 돌며, 신문뭉치를 모두 뿌려버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수금을 하는 것이다.

다른 소년들이 몇집밖에 못 돌을 시간에, 김우중은 일단 배급받은 신문을 몽땅 뿌린 것이다.

시장사람들도 김우중의 방식을 선호했을 것이다.

일단 빠르게 신문 소식부터 읽고 나서, 돈은 천천히 여유롭게 지불하는게 나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위험이 있었다. 돈을 떼먹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이를테면 수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김우중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더 많이 파는 이익으로 떼먹힌 돈은 만회할 수 있다.

그리고 떼먹는 돈도 한두번이지, 머리가 비상한 김우중은 자기가 신문을 뿌린 집을 정확히 기억하며 돈을 받아냈다.

다른 신문팔이 소년 누구도 김우중의 속도를 따를 수 없었다.

결국 방천시장 신문팔이는 김우중이 싹쓸이하고, 독점하게 되었다.


상호호혜적인 전략

상호호혜라는 표현이 있다.

풀어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면서 형성되는 파트너십이다.

상대를 요리해서 등쳐먹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거래를 하며 모두 이익을 보는 방식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익을 주는 것이 가장 쉽다.

이익이 되도록 거래하는 방식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객과 파트너로 끌어모을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대개 신중하게 거래하고, 상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으므로,

처음에는 스스로 작은 손해를 감당해야할 수도 있다.

마치 김우중이 신문을 던져주고도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신뢰가 쌓이다보면, 사람들은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에 참여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

이 과정을 버티게 되면, 방천시장 신문팔이를 싹쓸이한 김우중처럼,

상호호혜적인 영업구조로 폭발적으로 매출과 사세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은, 절대로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개척하는 첩경이다.


결국 이것은 김우중의 기질

결국 이것은 사람의 기질에 달린 것이다.

매사가 신중하고, 내실을 다지며, 이익이 작을 지언정 위험이 적은 것을 택하는 사람은,

이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우중의 기질은 공격적이고 확장지향적이였으며, 속이 텅텅비더라도 일단 세력을 키우면 불려놓은 몸집으로 더 큰 이익을 더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이러한 기질로 김우중은 대우를 30년만에 세계적인 거대 기업 집단으로 키웠으나,

결국 이러한 기질로 부도를 맞아 순식간에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반면교사로 삼을만하지만, 큰 성취를 원하는 사람은 그의 기질과 방식을 배워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