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 이세민과 위징의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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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중국 역사상 제왕 중의 제왕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당시의 재상이였던 위징(魏徵)과 이세민의 관계는 군신관계의 모범이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이용하는 매우 흥미로운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당태종 이세민의 위업

唐당나라의 황제로써 정관(貞觀)의 치세를 이끈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이세민은 젊은시절부터 화려한 위업을 쌓았다.

중국의 남북조시대는, 북방에서 내려온 선비족 왕조와 남방으로 도망간 한족 왕조가 서로 대치하던 시기였다.

그 북방 왕조는 소위 관롱(關隴)집단이라는 귀족집단을 형성하였는데, 이른바 팔주국(八柱國) 십이대장군(十二大將軍)이 대표적이다.

이 팔주국의 가문 중 하나였던 唐당국공 이연(李淵)이 이세민의 아버지이고, 태원(太原)의 유수로써 그 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전국칠웅 중 하나인 趙조나라가 한단(邯鄲)을 수도로 삼기 전에 일어났던 진양(晉陽)이 바로 태원이다.

수나라는 양제의 폭정으로 나라가 대혼란에 빠지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연 또한 거병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천하를 평정하는데 주도한 인물이 바로 둘째아들 이세민이다.

이 시기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군웅축록을 벌이는 이야기가 그 유명한 ‘수당연의(隋唐演義)’가 되겠다.

물론 그 주인공은 이세민이지만.


당태종 이세민의 영걸적 기질

당태종 이세민이 제왕 중의 제왕을 꼽히는데는 그의 영걸적 기질이 큰 이유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움직여 거병을 주도한 것은 물론, 전장터를 누비며 휘황찬란한 공적을 쌓았다.

그러한 기질 때문에 그를 따르는 인물도 많았는데, 그는 공신들을 기념하고자 누각을 짓고 초상화를 걸어두었다.

이른바 능연각훈신이라는 24명의 공신들이다.

후한 광무제의 운대 28장에 못지 않다.

뒤에서 이야기할 위징도 능연각훈신 중 한명이다.

많은 이들이 따르고 인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걸의 기질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서로의 목숨을 겨누던 적이 감화하여 따를 만큼.


현무문의 변 : 형제를 죽이고 황제가 되다

당나라가 개국하는데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하여도 이세민일 것이다.

거병을 주도한 것도 이세민이고, 전국을 평정한 것도 이세민이다.

그러나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아버지마저 제치고 개국황제가 될 순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버지 이연이 개국황제가 되니, 당나라의 고조(高祖)이다.

이제 다음 황제 자리를 두고 다투는 일이 남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세민은 둘째아들이였다.

그에게는 맏형 이건성(李建成)과 동생 이원길(李元吉)이 있었다.

동생은 그렇다치더라도, 장자였던 형은 따지고보면 이세민보다 후계 순위가 높지 않은가?

이세민이 아무리 당나라 개국의 주역이라한들, 가독을 상속하는 일은 또 다른 일이다.

야심이 폭발하는 이세민과, 그를 너무나도 잘 아는 이건성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게 된다.

동생 이원길은 큰형 이건성에게 붙었다.

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보여주는 경우가 있을까?

이세민은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장안성 북문 현무문으로 들어오게 시킨 뒤,

군사를 매복하여 하룻밤 사이에 제거해버린다.

골육상쟁으로 아들들을 잃은 이연은 결국 이세민을 후계자로 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당태종 이세민이 된다.


명재상 위징

위징은 원래 이건성의 사람이였다.

그냥 이건성에게 붙은 것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이세민을 제거하라고 주장한 인물이였다.

현무문의 변을 성공시킨 이세민이 위징을 잡아 심문하였다.

어찌 형제간의 우애를 갈라서 이간질을 시켰느냐고.

위징은 눈하나 깜짝않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이건성이 자기 말을 들었더라면 지금 그 자리엔 이건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고 솔직하며 자신의 주군을 위해 능력을 펼치고자했던 위징의 모습에 이세민은 감화하였다.

마음을 풀고 자기를 도와줄 것을 청하였고, 공명심이 강했던 위징 또한 대세를 따라 이세민을 돕는다.


당태종 이세민이 새매를 품어 죽이다
당태종 이세민이 새매를 품어 죽이다


태종회요(太宗懷鷂) : 당태종 이세민이 새매를 품어 죽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취미로 새매를 길렀다고 한다.

새매는 ‘큰 매’가 아니라 ‘작은 수리’로써, 관상용으로 기르는 새라고 한다.

중국의 고전과 역사를 보면, 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괴상한 취미를 가지면 나라가 망한다.

인간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도 모자를 판에,

주색잡기는 물론이고, 기화요초나 기암괴석을 수집하기, 신기한 동물 기르기, 공예 만들기, 서화 그리기 등..

이런 취미는 곧 정사를 소홀히 하고 한눈을 판다고 비판받기 좋은 일이였다.

새매를 기르는 이세민의 모습을 못마땅히 여기며 가장 직선적으로 비판했던 이가 바로 잔소리꾼 ‘위징’ 이였다.

어느날 이세민이 한가롭게 새매를 감상하며 놀고 있었는데, 멀리서 위징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위징은 이미 이세민이 새매를 가지고 놀던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세민은 놀라서 냉큼 새매를 옷자락 속에 품었다.

정사를 내팽겨치고 새 따위에 홀렸다는 잔소리를 듣기 싫었을 것이다.

이세민은 잠깐 새매를 숨기고 위징이 돌아가면 꺼낼 생각이였겠지만, 위징은 군왕의 잔머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보란듯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면서, 새매가 숨막혀 죽을 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었다.

이세민은 새매가 갑갑해 죽을까봐 안절부절하였으나, 창피하게 그 사실을 들킬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위징은 그 모습을 즐기듯 한바탕 원없이 떠들다가 돌아갔는데,

이세민이 허겁지겁 새매를 꺼냈을 때는 이미 숨막혀 죽은 상태였다.

아끼던 새매가 죽은 이세민은 위징에 대한 괘씸함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옆에 있던 장손황후는 오히려 그런 충신이 있다는 것이 이세민의 홍복이라며 축하를 건넨다.


이세민과 위징의 파트너십

아끼던 새매가 죽은 이세민과, 작정하고 그짓을 한 위징.

어떻게 보면 앙숙이 아닌가 싶지만, 두 사람은 철저하게 상대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인 계산적인 인물들이였다.

물론 너무나도 인간미 넘치게 말이다.

이세민은 아끼던 새매를 죽이면서까지 재상의 간언을 경청하는 명군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위징은 주군의 감정이 상하고 미움을 받을 지언정 옳을 하고야마는 충신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위징은 유독 상소나 간언을 많이 올렸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사관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천자가 노여워하건 어쩌건간에 목숨을 걸고 간언을 한 충신이자 명재상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간 것이다.

이세민을 이용해서.

위징이 먼저 죽은 뒤, 이 사실을 알은 이세민의 기분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말년의 이세민이 큰 실책을 한 뒤에는 자신에게 거침없이 간언을 할 위징이 없음을 너무나도 아쉬워하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서로를 이용하며 명군과 충신의 이미지를 구축한, 윈윈 전략의 콤비, 당태종 이세민과 재상 위징.

남다른 쇼맨십으로 그들의 고사는 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켜주는, 그렇게 쇼를 벌이는데 합을 맞추어줄 파트너가 있다면,

더 나은 인생으로 더 풍성한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