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그야말로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온갖 머리를 굴려서, 그 선택을 했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익과 손실이 명백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고민없이 명쾌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익과 손실이 불분명하고 애매한 경우에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오늘은 계륵(鷄肋) 뜻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선택의 순간에 현명한 결단을 내리는 방법에 대해서 논해보도록 한다.
계륵 뜻
계(鷄)는 닭이고, 륵(肋)은 갈비이다.
말그대로 닭의 갈비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주로 먹는 닭갈비 요리가 아니라, 진짜 닭의 갈빗대에 붙은 살을 말한다.
닭의 갈비살은 살점이 많지 않지만, 뼈구조가 복잡해 한번 먹을려면 손과 입에 닭기름을 범벅을 하며 발라 뜯어먹어야 한다.
소갈비 돼지갈비라면 풍미와 식감이 좋은 최고의 인기 부위 중 하나가 갈비살인데, 소나 돼지는 덩치가 커서 갈빗대 뼈와 살만 발라내도 살이 덩어리째로 나올 정도이니, 힘써서 도축하면 먹을만한 보람이 있다.
하지만 닭은 워낙 개체가 작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양계시설이 잘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는 그저 잔반을 먹이거나 마당에서 알아서 벌레들을 잡아먹고 크다보니 , 덩치가 그렇게 크지 않다.
닭다리나 닭가슴살, 엉덩이살 등 큼지막한 살덩이 부위들이 많은데, 닭갈비 조금 뜯어먹을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계륵이라는 고사의 유래는 그 유명한 삼국지 시대 때 조조의 일화에서 기원한다.
삼국지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유비의 인생에서 가장 클라이막스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때가, 종친이었던 유장을 뒷통수치고 서천 파촉을 장악한 후에, 조조가 점거하고 있던 한중을 쳐서 대승을 거두고 한중왕에 올랐을 때이다.
유비가 한중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조조는 명장 하후연을 잃고, 연이은 패배로 철수를 결정하며, 대승으로 거둔 유비는 기세를 몰아 한중왕을 자칭하게 된 것이다.
유비가 한중왕을 자칭한 것은 조상이었던 한고조 유방이 한중에서 힘을 길러 중원의 항우를 상대로 결국 승리를 거둔 모티브를 쫓는 것으로 삼국지의 아주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아무튼 한중 공방전에서 조조는 결국 철수하지만, 이 철수를 내리는 결정도 쉽지 않았다.
직접 대군을 끌고 온데다가, 명장 하후연까지 잃은 마당에, 그냥 돌아가자니 천하의 조조 체면이 말이 아니였다.
뿐만 아니라 한중이라는 요지를 잃게 되면 유비가 중원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해주는 꼴이기 때문에 버리자니 아주 아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무리해서 한중을 지키고자 유비와 싸우기에는 후방에서 관우와 손권이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국적인 전략에서 맞지 않다.
결국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조조가 고심하고 있는데, 그날밤 저녁요리로 닭요리가 올라왔다.
닭의 갈빗살을 한참 발라먹던 조조는 때마침 들어온 하후돈에게 그날 군영의 암구호를 ‘계륵’으로 하라고 명한다.
하후돈이 이 암구호 명을 전파하자, 군의 참모였던 양수가 나서기를, 조조의 뜻은 철수를 하라는 것이라며 서둘러 철수 채비를 갖추라고 명했고, 조조군은 철수를 시작한다.
머리가 비상했던 양수는 조조의 뜻을 간파하였는데, 닭갈비는 발라먹자니 힘이들고 먹자니 살이 별로 없는 부위이므로, 애써 발라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후 양수가 주제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거슬렸던 조조는 양수를 참형에 처한다.
이 일화를 기원으로, 계륵은 남 주자니 아깝고 자기 먹자니 귀찮은 애물딴지 같은 상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계륵과 신포도
어찌보면 진퇴양난의 상황을 닭갈비에 비유한 것은 시문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조조의 재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한중이라고 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닭갈비로 퉁쳐버린 것은 그저 조조의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 이야기처럼, 여우가 포도를 먹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어차피 맛이 시큼한 신포도이기 때문에 먹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며 스스로 위안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조조가 유비에게 한중을 빼앗긴 이후, 유비는 한중왕을 자칭하고 더욱 가열차게 조조를 압박했다.
물론 관우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변수로 인해 삼국의 정세가 완전히 뒤바뀌고, 장비마저 죽는데다가, 복수를 위한 이릉대전이 참패로 끝나면서 유비도 분통이 터져 죽고 만다.
하지만 한중이라는 땅이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수차례에 걸쳐 출사표를 올려 북벌을 감행하고 조씨의 위나라를 끈질기게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이다.
조조가 이런 한중의 중요성을 몰랐을리는 없다.
다만 자신의 패배를 외면하고 싶고, 기세가 오른 유비를 물리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륵이라는 황당한 변명으로 철수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진짜 계륵이라면 안먹는 것이 현명한 선택
조조의 정신승리가 아닌 진짜 닭갈비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닭갈비는, 소갈비나 돼지갈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류 특유의 아주 복잡한 뼈구조 사이 틈에 있는 약간의 살점일 뿐이다.
개뼉다구를 뜯는 것도 아니고, 뼈에 붙은 살점을 알뜰살뜰하게 발라먹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다.
먹을 수 있는 살은 손톱만큼도 안되는데, 손과 입에 기름을 범벅을 하게 되고, 앞니빨로 뜯어야하는 특성상 치아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살점에 붙은 티끌마저 쪽쪽 빨아먹는게 좋은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밥알한톨 국물한모금도 남김없이 털어먹는 것이 복스러워 보인다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먹어봤자 아무런 이득도 안되는 닭의 갈비 살점은 뒤도 안돌아보고 버리는게 이익이다.
닭고기 도축장에서 살을 발라내고 뼈다구만 모아서 발골기계에 넣고 잡육을 발라내는 것도 아니고, 보통 닭 한두마리 먹는 식사에서 닭뼈를 알뜰하게 발라먹은들 아무런 이득되는 것이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무엇을 선택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을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렇게 선택한 것에 효율적으로 쏟아붓는 것을 ‘집중’이라고 이야기한다.
계륵을 탐내어 붙잡혀있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비록 버리자니 아깝고, 먹는것이 딱히 엄청나게 수고롭지도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회비용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닭다리나 닭가슴살 덩어리를 옆에 그대로 둔채로, 닭갈비 살을 쪽쪽 발라먹느라고 정신이 팔린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일상에서 계륵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눈앞의 닭갈비에만 시선이 팔릴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시야를 넓혀서 전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에 시간과 공력을 집중해서 쏟아부어야할지,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닭다리나 닭가슴살이 있다면 닭갈비를 먹을 필요가 없다.



